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의 '해어화(解語花)'. 옛사람들은 기녀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만큼 옛 기생들은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탁월한 여류문인이었다. 이들이 남긴 시들은 당시의 문화와 예술의 깊이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한국 문학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건만, 여전히 기생들의 작품집은 출간된 적이 없을 정도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차에 문정희 교수 나서서 이들의 문학적 성과를 한 권으로 묶은 <기생시집>을 펴냈다. 제목에서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황진이·매창·운초·매화·송이 등 유명한 기녀들의 작품은 물론, 생몰 연대와 출신지를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기녀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기생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수록된 시들은 대체로 그 정서와 소재가 유사하다. 떠나간 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담은 시, 기생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회한(悔恨)이 서린 시, 남성의 위세에 당당하게 대응하는 재치 넘치는 시 등 몇 가지의 테마로 묶여지는 시편들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기발하고 다양한 은유를 통해 화류계 여인네의 삶을 비쳐준다.

"소설과 시기(詩妓)의 것에는 감정을 거짓한 흔적이 없습니다. 만일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라는 시에 대한 평이 옳은 말씀이라면 이 점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낙제이고 기생의 시는 급제외다"라고 말한 김억의 지적처럼, 기녀들의 진솔한 생활(및 연애)감정은 수많은 고전 문학 속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아 왔다.

이런 의미에서 <기생시집>은 기녀들의 시에서 묻어 나오는 애틋한 여심과 한없이 고아한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운초의 「층시(層詩)」, 계향의 「송별(送別)」, 계월의 주옥같은 시들 만나볼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