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암유집 -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33 (알코너)

아암유집 -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33 (알코너)
아암유집 -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33 (알코너) 도서상품에 대한 정보입니다.
저자 아암 혜장 (지은이), 김두재 (옮긴이)
출판사 / 판형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5년 초판1쇄
규격 / 쪽수 150*225(보통책 크기) / 208쪽
정가 / 판매가 13,000원 / 1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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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설명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33권.
 
아암 혜장兒庵惠藏(1772∼1811)의 시문집이다.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암 혜장이 저술한 시문과 「주역」의 태극과 괘변卦變과 작괘법作卦法과 하도河圖와 양의兩儀 등에 대한 문답, 그리고 「논어」에 대한 문답과 「능엄경」에 대한 문답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아암 혜장 스님은 설봉雪峰 스님의 증손 제자이고, 송파松坡 스님의 손자 제자이며, 정암晶岩 스님의 법을 이은 사법 제자이다. 다산이 쓴 비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암의 본래 호는 연파이다. 대둔사 12종사 중에 연담 대사가 맨 끝인 12번째이고, 또 그 뒤 12강사 중에도 연파 대사가 맨 끝인 12번째이다. 그런데 끝이란 것은 뒤쳐진다는 말이 아니고 꽃을 피웠다는 의미이다. 연담 노장은 대련大蓮이라 하고 연파 공은 소련小蓮이라 하였다.” 또 탑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암은 본래 김 씨이고 혜장은 그의 법명이다. 자는 무진이고 본래의 호는 연파이다. 새금현塞?縣 화산방華山坊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어려서 출가하여 대둔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월송 재관月松再觀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춘계 천묵春溪天默 스님으로부터 학업을 연마했다. 천묵 스님은 외전外典도 두루 꿰는 석학이었고, 아암은 지혜가 출중하였으므로 그에게서 학업을 닦은 지 수년 만에 스님들의 사이에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이미 장성해서는 불서를 널리 배우고 연담 유일蓮潭有一과 운담 정일雲潭鼎馹을 차례로 모셨다. 스님은 나이 27세에 정암 즉원晶巖?圓 스님 아래에서 향을 뽑아 사루고 그의 법통을 이었으니, 정암 스님은 곧 소요逍遙 스님의 종통을 계승한 분으로 화악 문신華岳文信의 적전嫡傳이다. 아암 스님은 여러 스승들로부터 경전을 배웠는데, 비록 머리를 숙이고 강설을 듣곤 하였으나 문 밖을 나설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하기를 ‘틀렸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비?’란 ‘비웃는 말(?)’이다. 그러나 오직 연담스님의 글이나 가르침에 대해서는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이 겨우 30에 두륜산 큰 법회에 주맹主盟이 되었는데 그 법회에 모인 학인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 아암은 외전에 대해서는 심하게도 『주역』과 『논어』를 좋아하였는데, 그 지취旨趣를 연구할 적에는 그 깊은 이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또 기윤期閏의 수 즉 율력律曆과 율려律呂(音律)의 법과 성리학性理學 등 모든 책에 대하여 그 정핵精核을 모조리 연마하였다. 그러므로 웬만한 세속의 유생들은 그에 미칠 사람이 없었다. 스님은 성격이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가 지은 시는 매우 작았고, 게다가 운을 부르면 그 운을 따라 즉석에서 시를 짓는 것은 잘 못했지만, 누가 시를 지어 주면 반드시 화답和答을 하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곧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특히 병려율격騈儷律格에는 재능이 있었다. 스님은 불서 중에서 지독하게도 『수능엄경』과 『기신론』을 좋아했으며, 『조왕경?王經』이나 「측주厠呪」 따위는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아 다른 스님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스님에게는 유명한 제자 3명이 있었으니, 수룡 색성袖龍?性과 철경 응언?鯨應彦과 침교 법훈枕蛟法訓이 이미 스님의 의발을 전해 받았다. 아암 스님도 어느새 늙어 신미(순조 11, 1811)년 가을에 병을 얻었다. 9월 16일 북암北庵에서 적멸을 보였으니 세속 나이는 40살이다.” 이와 같이 탑명에 기록된 것처럼 아암은 30세 때에 대둔사에서 『화엄경』 법회를 주관하여 교화를 떨쳤으며, 35세 때에는 정약용과도 교분을 지녔다. 아암은 특히 『기신론』과 『능엄경』을 좋아하고 강조하여 『능엄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였다. 아암 혜장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과 한국 차 문화의 중흥조인 초의草衣 스님과 차에 의해 깊은 연관을 맺은 선사로, 우리에게는 다산이 혜장에게 차를 달라고 지은 「혜장 상인에게 차를 청하며 부치다(寄贈惠藏上人乞茗)」라는 시로 유명하다. 다산은 강진에 유배되던 당시 백련사白蓮社의 주지로 있었던 혜장과 수시로 만나 차를 즐기며 인간적인 대화에서부터 학문적인 토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혜장은 다산에게 경학을 배우고 차를 권유하여 다산으로 하여금 차 문화를 알게 하였다. 스님이 아암이란 호를 갖게 된 것은 다산이 유달리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혜장에게 “자네도 어린아이처럼 유순할 수 없겠나?”라고 책망하자 스스로 호를 아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님은 겨우 40세밖에 살지 못하였는데 다산도 스님의 열반을 아쉬워하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선사는 『역경』을 중심으로 유학의 경전에 대한 공부가 심오하여 사대부들과의 교류가 대단히 많았다. 다산과 추사秋史를 위시하여 명공거경들과 시문을 나누고 선문답을 하면서 우의를 공고히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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