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의 삶을 살았던 일연(一然)은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삼국유사>의 찬자라는 점이 중시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행적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는 형편이다. 고려시대 가장 격동기였던 13세기를 살았던 그의 생애가 중요한 것은 그가 역사가이기 이전에 승려라는 사실과, 그가 생존한 시기가 민족사상의 일대 격변기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오랫동안 고려불교사와 일연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삼국유사>라는 필터를 거쳐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보다는, 일연을 중심축에 두는 연구방향을 택하였다. 일연은 국왕 및 중앙 정치권력과 연결이 닿아, 국존에 책봉될 정도로 불교계를 대표하게 되었다. 선승의 삶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표방하였으며 사서의 편찬과 관음신앙에 귀착하였다. 본래 지향했던 승려로서의 목표인 수행과 교화를 위한 노력은 장년기 이후 그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단월들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되었던 측면이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일연은 궁극적으로는 고려를 재조하려는 역사의식을 가졌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삼국유사>의 찬술로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삼국유사>의 성격을 야사, 설화민담집, 하나의 만록(漫錄), 불교(문화)사 등으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고, 시대의 고민과 일연 및 불교세력의 사관을 반영한 역사서로 읽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