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군 충무공 정충신 - 정충신 장군 전기 (알가22코너)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 - 정충신 장군 전기 (알가22코너)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 - 정충신 장군 전기 (알가22코너) 도서상품에 대한 정보입니다.
저자 정환호 편저
출판사 / 판형 충무공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 / 2003년 초판
규격 / 쪽수 190*260 / 495쪽
정가 / 판매가 0원 / 18,000원

도서 상품 상태

상급(하드커버)-낙서, 밑줄 없이 상태 좋음, 측면과 상단부에 검은색 매직줄 그어져 있음

도서 설명

우리 역사에서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은 9분 가운데 한 분으로

전남 광주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자 장군....

광주의 금남로라는 거리 이름도 이 분의 군호에서 유래 되었으니 어떤 분인지는 알만할 것이다.   

 
1576(선조 9)~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광주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윤(綸)이다. 북방 여진족에 대해 항상 경계하고 방비할 것을 주장했으며, 지략과 덕을 갖춘 명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처음 절도영에 속한 정병(正兵) 겸 지인(知印)으로 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權慄) 밑에서 종군했다. 권율의 장계(狀啓)를 가지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갔다가 이항복(李恒福)의 눈에 띄어 학문과 무예를 닦아 그해 겨울 무과에 합격했다.
 
1621년(광해군 13) 만포첨사(滿浦僉使)로 국경을 수비하면서 여진족들과 접촉한 뒤 장차의 우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623년(인조 1) 안주목사 겸 방어사를 겸임했다.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서 반군을 황주·안현에서 물리쳐 난을 진압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이어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를 지냈고 1627년 정묘호란 때 부원수로 종군했으며, 1630년 가도(島椵)의 유흥치(劉興治)가 의주를 침입했을 때 역시 부원수로 출전하여 물리쳤다.
 

1633년 조정에서 후금에 대한 세폐의 증가를 반대하여 단교(斷交)를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여 당진·장연에 유배되었다. 1634년 풀려나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걸쳐 정통했고, 몸집이 작았으나 기상이 늠름했으며 청렴하여 덕장(德將)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에 얽힌 많은 설화가 전하는데, 무등산이 갈라지며 청룡과 백호가 뛰어나와 안겼다는 태몽, 이항복과의 인연, 임진왜란 때의 활약과 여진족을 다루는 영웅담 등이 한문야담집에 전한다. 광주광역시 경렬사(景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만운집〉·〈금남집〉·〈백사북천일록 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도서 부연설명

이 분류의 인기도서